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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입니다

by 벙어리저금통 2023.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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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란 일본의 침략전쟁 중 일본군이 주둔하던 지역에 설치된 위안소에서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여성을 의미하며, 기림의 날은 위안부의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국가 기념일입니다.

 

2023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는 피해자 분들의 용기로 세상에 알려진 진실입니다.

그날의 진실을 잊지 않기 위해, 용기와 뜻을 기리기 위해, 기림의 날과 위안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023 기림의 날 기념식

일시:  2023년 8월 14일(월) 10시 30분 ~ 11시

장소: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

프로그램: 국민의례, 주제영상, 기념공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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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참할 수 있는 프로그램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기리는 마음과 응원을 담아 동참해 주세요.

 

메시지 작성하기 

 

기림티켓 만들기

 

위안부를-기리기-위한-기림티켓
제가 만들어본 기림티켓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티켓을 만들어 sns에 공유하는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 알아보기

일본군 관할의 위안부 제도가 확대 시행된 배경

1. 중국여성에 대한 강간사건 방지

2. 체계적인 성병검사로 일본군의 성병을 예방하고, 군전력이 약화되는 것을 방지

3. 일본 군인들의 사기진작

4. 일본군인들이 중국인 위안시설 출입 시 군사비밀 유출의 우려를 방지

 

역사연표

- 1932년 1월

제1차 상해사변과 군위안소 설치

 

중국상해사변을 일으킨 일본군을 상대로 성접대를 위한 상해 군위안소를 설치

부참모장의 회고록에 일본에 살던 조선여성들도 있다고 기록되어 있음

 

-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 발발과 일본군 위안부 제도 확대 시행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군의 중국여성 강간사실이 외부세계에 알려져 일본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군위안소를 본격적으로 설치, 체계적으로 운영

 

- 1939

제2차 세계대전 발발

 

- 1941년 7월

관동군의 특별군사연습과 조선인 위안부 대규모 모집

 

중국 동북부에 주둔 중이던 일본은 소련과의 전쟁을 대비해 국경 근처에 약 8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특별군사훈련을 실시하였고 이 병력에 제공하기 위해 2만여 명의 조선인 위안부 모집을 계획 조선총독부에 의뢰하였고 약 1만여 명의 조선여성을 중국으로 이송 

 

-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일본전황이 종전을 선언하며 전쟁의 핵임을 회피하기 위해 위안부 관계서류 등 공문서를 파기

 

- 1946년 5월 ~ 1948년 11월

극동국제군사재판을 통한 일본의 전쟁범죄 처벌

 

일본의 전쟁범죄 처벌을 위한 재판이 열렸지만 당시 독립국가가 아니었던 조선은 재판에 참여할 수가 없었고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는 소추되지 않았음

 

- 1948

바타비아 B·C급 전범재판과 위안부

 

위안부에 대한 성적학대는 C급 전쟁범죄에 해당되어 네덜란드의 전범재판에서 12명의 일본인과 민간인들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전승국들은 위안부 관련 재판을 하지 않았음

 

-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 체결(한일청구권협정)

 

한국과 일본의 국교관계를 규정하는 조약으로 이전에 체결된 모든 조약은 무효임을 확인

하지만 일본은 이 '무효 '라는 단어를 '효력이 없는 것'이라고 멋대로 해석하며 배상청구권을 부정함

 

- 1975년 10월

오키나와 배봉기 할머니 증언 일본 신문 보도 

 

오키나와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故배봉기 할머니는 전쟁이 끝나고도 고향으로 돌아갈 엄두도 못 낸 채 오키나와를 전전하며 사시다 1972년 오키나와가 미국통치에서 일본으로 반환되면서 불법체류가 된 할머니는 강제출국을 당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역사를 밝힘

 

- 1988년 4월 21일 ~ 4월 23일

윤정옥 교수, 국제세미나에서 '정신대 답사' 보고

 

윤정옥 교수는 위안부 관련 자료 수집과 해외의 일본군 위안소 설치 현장을 답사해 그 결과를 국제세미나에서 발표함

 

- 1990년 7월 10일

한국정신대연구회(현 한국정신대연구소) 결성

 

국내외 생존자들의 증언을 모아 증언집을 출간, 해외에 남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계시던 생존자들을 조사해 생활지원과 귀국을 추진하는 활동을 함

 

- 1990년 11월 16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결성

책임자 처벌 및 7가지 사항요구

 

1. 전쟁범죄 인정

2. 진상규명

3. 공식사죄

4. 법적배상

5. 전범자 처벌

6. 역사교과서 기록

7. 추모비 외 사료관 건립

 

-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님이 실명으로 최초 언론 공개 증언

 

당시 67세였던 김학순 할머님은 구속당한 채 당한 치욕스러웠던 경험을 기자회견을 통해 최초로 공개함

이후 피해자 등록 시작과 일본에 대한 사실 인정과 사과 요구가 이어짐 

 

- 1991년 9월 18일

시민단체, 정신대 피해 신고전화 개설

 

- 1991년 12월 6일

일본정부에 책임인정과 사죄,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일본법원에 제기하였으나 2004년 일본 최고재판소 원고 패소 판결

 

내용출처: 여성가족부 기림의 날

 

김학순 할머니의 "이 모든 것이 강요였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는 말이 참 가슴 아픕니다.

우리의 역사 우리가 기억해야 하며, 기림의 날이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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